(앞 글에서 이어짐)
(이인규님) (8) 사내아이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의 사내아이,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성도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이들에게 예수는 곧 하나님이 된 지방교회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은 “이기는 이와 나의 일을 끝까지 지키는 이에게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위를 줄 것이다. 그는 질그릇들을 부수듯이, 쇠지팡이(철장)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받은 것처럼 권위를 줄 것이다”(계2:26-27)라고 말씀하십니다. 철장으로 다스린다고 하면 무조건 예수 그리스도라고 기계적으로 푸는 것은 위 문맥을 왜곡시키는 발상입니다. 주 예수님과 그분의 이기는 자들이 모두 철장으로 다스릴 것임을 성경은 말합니다.
# 사내아이가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는 사실은 사내아이가 2장 26-27절에 언급된 이기는 자들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더 나아가 12장 5절에서의 "낳으니"는 사도행전 13장 33절, 34절에서처럼 부활을 상징한다. 사내아이는 죽었다가 부활한 이기는 성도들로 구성된다. 이것은 계시록 12장 11절의 "죽기까지"라는 말로 증명된다. 죽은 모든 이기는 자들은 사내아이의 부분이 될 것이다. 사내아이는 부활에 의해서 완전히 출현될 것이다. (위트니스 리, 교회 404)
전적으로 성경에 근거한 설명입니다.
(이인규님) “이미 지방교회가 말하는 부활이 어떠한 개념인지 여러분은 잘 아실 것이다. 그렇다면 이 사내아이는 누구를 말할까?”
이인규님께 반문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내아이는 누구를 말합니까?” 사내아이가 예수님입니까?
# 계시록 2장 13절에서 주 예수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네가 어디 사는 곳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보좌가 있는 데라"라고 말씀하셨다. 사탄이 거하는 곳은 세상이다. 교회는 세상과의 연합 안으로 들어가서 세상적으로 되었기 때문에 지금은 사탄이 거하는 곳, 즉 세상 안에 거하고 있다. 버가모 교회는 또한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에 거한다. 또다시 이것은 세상을 언급한다. 세상은 사탄의 거처일 뿐 아니라 그가 다스리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제 교회는 세상과 하나 되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사탄과 하나 되었다. 그런 세상적인 교회는 사탄의 사상과 관념과 이론과 행습들로 흠뻑 적셔졌다. (교회 385쪽)
# 교회는 사탄의 회로부터 핍박을 받았고, 결국에는 세상적으로 되어서 사탄이 거하는 곳이요, 그의 보좌가 있는 곳에 거했다. 그러나 두아디라에는 이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다. 이제 사탄은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교회를 그 자신으로 흠뻑 적셨다. 변절한 교회 안에는 사탄의 깊은 것들, 즉 사탄의 비밀스런 교훈들이 있다. 이것은 바로 사탄의 깊은 사상, 사탄의 관념이 변절한 교회를 흠뻑 적셨다는 것을 가리킨다. 결국 이 교회는 사탄의 체현이 된다. 합당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지만, 변절한 교회는 사탄의 체현이다. (교회 388쪽)
오늘날 세상은 교회 안에도 깊숙히 침투해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인규님) ”지방교회는 사탄의 왕국을 기독교의 교회로 본다. 사탄과 하나가 된 곳, 사탄이 거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사내아이는 누구를 말하고, 그 사내아이를 쫓던 용, 즉 사탄은 누구를 말하는가? 용은 기독교, 즉 사탄이고, 사내아이는 지방교회라는 것이다.”
계시록 2:13은 사탄이 왕인 세상과 하나된 ‘버가모 교회’ 안에 사탄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이것을 교회가 세상과 하나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럼에도 이인규님은 “지방교회는 사탄의 왕국을 기독교의 교회로 본다.”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 성경에서 여자는 보다 약한 자를 상징하고, 남자는 보다 강한 자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계시록 12장 5절에 있는 사내아이는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서 보다 강한 부분을 의미한다. 모든 세대에 걸쳐서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일부 더 강한 자들이 있어 왔다. 성경에서 이들은 하나님을 위해 전쟁을 치루고 하나님의 왕국을 땅으로 이끌어 내리는 집합적인 한 단위로 여겨진다. (교회, 404쪽)
위트니스 리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다음 구절에 내포되어 있다.....
# 만일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이긴다면, 진실로 우리는 이기는 자들, 즉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대적하는 상황을 이기는 자들이요, 세상과 사탄과 적그리스도들과 타락한 기독교계의 모든 타락들을 이기는 자들이다. (교회, 401-402쪽)
성경에 근거한 균형잡힌 설명입니다.
(이인규님) (9) 고린도후서 3:17의 영:
"주는 영(프뉴마)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3:17)
지방교회는 예수가 "성령이 되셨다"고 양태론적인 해석을 하는데, 당연히 그러한 성경구절은 단 하나도 없다. 지방교회가 양태론적인 증거로 인용하는 대표적인 구절이 바로 고후3:17이다. 다시 말하여, 예수가 직접 성령이 된 것이며, 지방교회는 이것을 총체적인 삼일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는 본문을 "주는 그 영(the Spirit)이시다"라고 해석한다.....정관사가 있으므로 주는 “그 영이시다”라고 해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코메디적인 해석으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얼마나 단편적인 짜맞추기인지를 곧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신"도 "the Spirit"이기 때문이다.”
고후 3:17절은 위격의 경륜적인 동일시를 말하는 것입니다. 지방 교회측 누구도 이 구절을 놓고 삼위의 2격이 3격이 된 것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은 한 마디로 이인규님의 터무니없는 조작이요 거짓주장일 뿐입니다. 지방 교회측은 원칙적으로 한 위격은 삼일 하나님 전체이기도 하시다는 것을 믿고 말함으로, 원칙적으로 1격이 2격이 된다거나 혹은 2격이 3격이 된다는 말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정통 개혁 신학자 로뢰인 뵈트너는 주기도문에서 성부는 배타적으로 제1격만을 말하지 않고 “삼일 하나님”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어거스틴도 삼위의각 위격은 모든 위격들을 포함한다(all in each)라고 말합니다.
(이인규님) ”위트니스 리의 주장이 엉터리라는 성경구절을 대략적으로 찾아보면, 부활전의 막1:10의 성령도 the Spirit 이고, 요1:32. 33도 the Sprit이며, 눅2:27, 4:14도 the Spirit 이다. 모두 부활전이지만 "그 영"으로 해석되어 부활후의 "살려주는 그 영"이 되어야만 한다. 또 마3:16의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비둘기처럼 강림하시던 성령님도 "the Spirit"이며, 이와 같은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다.(헬: 호 프뉴마, the Spirit)
예수님과 The spirit(살려주는 그 영)이 함께 공존하는 마3:16의 장면은 지방교회의 양태론을 맞추기 위한 성경해석이 얼마나 희극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눅2:27의 시므온에게 임한 “그 성령”도 양태론적인 살려주는 영이 되어야만 하며, 예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셨다고 하는 눅4:14의 성령도 살려주는 "그 영"이 되어야만 한다.
즉 위트니스 리의 주장을 따르자면, 창세기의 하나님의 신도 그 영이시고, 신약시대의 성령님도 그 영이기 때문에.... 성령은 모두 같은 영이기 때문에 아래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엉터리가 된다.”
이미 알다시피 지방교회는 구약의 성령과 신약시대의 성령은 부활 후 성령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의 영을 말하지만, 그것은 최종 완결된 영이 아니다. 여호와의 영과 성령도 최종 완결된 영도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최종 완결된 영이 계시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 후였다. 이 영은 창세기의 하나님의 영, 구약의 여호와의 영, 마태복음 1장의 성령과 다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27-28쪽)
이 문제는 이미 앞에서 충분히 다루었습니다. 하나님의 영 혹은 심지어 성령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럼에도 요한복음 7:39는 “예수님께서 아직 영광스럽게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 영께서 아직 계시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영광 받으신 시각인 부활 시점(눅24:26) 이전에 ‘그 영이 계시지 않았다’라고 말한 것은 성경 자체이지 위트니스 리의 말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 영이 계시기 전과 후를 구별하여 말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16은 예수님께서 “‘보혜사 성령’을 아버지께 구해서 우리에게 보내 주실 것”을 미래시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분과 그 이전의 성령 (예를 들어 마3장 침례시 강림하셨던 성령)은 같은 성령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위 위트니스 리의 설명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요7:39)은 고신교단 신학교 총장이신 변종길 교수님의 박사 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합니다(http://www.localchurch.kr/16914). 따라서 독자분들은 지금의 이인규님처럼 가볍게 취급하기 보다는 좀 더 진지한 자세로 본 주제를 탐구해 볼 것을 권면하고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이상에서 본 것처럼 아마추어 성경 해석가인 이인규님은 지극히 피상적인 자신의 이해로 균형잡히고 깊이 있게 성경을 푼 다른 이들을 함부로 정죄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이인규님은 자신이 참되게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처럼 무조건 자신은 옳고 다른 이들은 틀렸다는 식으로 접근하기 보다는 자신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하고 상호 교제의 차원에서 함께 성경을 알아가기를 권면합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