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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몸  >  일
교회를 건축하는 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의 모든 일에서 극히 큰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는 이런 일을 ‘그 사역의 일’(엡 4:12) 이라 칭하여 다른 일과 구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오직 한 무리만이 ‘그 사역의 일’을 합니다. 그 무리에 포함된 사람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사도들, 신언자들, 복음 전하는 자들, 목자와 교사들

사도들과 신언자들은 교회의 기초를 세우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엡 2:20)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교사는 덧붙인 것임)은 세워진 기초 위에 건축하는 사람들 입니다. 사도들과 신언자들은 직접 주님으로부터 온 것으로서 특별한 방식으로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거처의 기초를 세웁니다. 복음 전하는 자들과 목자들은 교회 안의 비교적 일반적인 사역으로서 사도들과 신언자들의 가르침으로 사람을 구원시키고 온전케 합니다.이 네 종류의 사람은 또 다른 두 무리로 나눌 수 있는데, 사도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은 복음 방면을 더 위하고, 신언자들과 교사들은 교회 방면을 더 위한 것입니다.

네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분석

교사와 목자는 한 종류의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양육해야 하고 양육 하는 자는 반드시 사람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입니다.복음 전하는 자의 일은 다름이 아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경 안에서 신언자의 위치는 교사(목자)와 복음 전하는 자보다 더욱 뚜렷합니다. 신언자는 성령의 기적적인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경우와 일상적인 것에서 성령의 영적 능력을 받아 하나님을 위해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그러나 이 네 종류의 사람들 중에서 사도는 다른 세 종류와 크게 다릅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진리를 계시하고, 교리를 확정하며, 제도를 정하고 성도를 온전케 하고 은사를 주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세워진 자들입니다. 그들의 일은 한 지방에 제한되지 않고 모든 지방을 위합니다.

직분과 은사

성경은 사도가 은사가 아니라 일종의 직분임을 말합니다(딤전2:7). 사람이 사도가 될 수 있는가 의 여부는 능력에 있지 않고 완전히 그가 하나님에 의해 보내심을 받았는가에 있습니다(딤후1:11). 능력은 은사의 문제이고, 보내심을 받는 것은 직분의 문제입니다. 은사는 본래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고,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온 것입니다. 사도는 일종의 직분입니다. 은사 중에도 개인이 얻은 은사와 교회가 얻은 은사로 구분됩니다.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교회가 얻은 한 종류의 사람이지(고전12:28), 특별한 영적 은사가 아닙니다. 사도의 은사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보편적 교회와 지방 교회

보편적인 교회 안에서는 사도가 첫째이고, 지방 교회들 안에서는 신언자가 첫째입니다(고전12:28). 지방 교회의 집회 중에서 가장 큰 은사는 신언자입니다. 신언자는 하나님의 갈망을 말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오늘날의 갈망뿐 아니라 하나님의 장래의 갈망도 말해 낼 수 있습니다. 사도는 보편적 교회의 직분에 불과합니다.

사도의 개인적 은사

누가 사도입니까? 사도는 하나님께서 그분을 위해 나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도록 개인적인 은사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 그분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사람을 택하여 보내신 그릇입니다. 은사는 일종의 영적 능력이지만 사도는 하나의 지위입니다. 은사가 있더라도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사도가 아닙니다. 마치 수학자가 교수로 초빙되지 않으면 수학 교수가 아닌 것과 같습니다.

일의 범위

그 사역 안에서 신언자와 교사의 용도는 그 지방에 국한됩니다(행13:1, 고전14:26,29). 복음 전하는 자들은 성경이 이것을 많이 언급하지 않음으로 그 범위를 알 수 없습니다. 한편 사도의 사명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각지로 다니며 하나님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거나 교회를 세우는 것임으로 이들의 범위는 각지를 위한 것입니다.

사역을 얻는 절차

신언자나 교사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에게 신언자나 교사의 은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하는 자가 어떤 종류의 은사로 복음 전하는 자가 되었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도는 특별히 하나님의 부르심과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야 사도가 됩니다(행13:4, 14:14). 이것이 사도가 그 사역 안에 있는 기타 사람들과 다른 점입니다.

사역과 일과 교회들은 기능과 범위에 있어서 아주 다르지만, 실제로 이들은 서로 협력하며 상호 연관을 갖습니다.

에베소서 4장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말하는데, 거기서는 교회들과 일과 사역 사이에 구별이 없습니다. 교회들의 성도들, 일의 사도들, 사역의 서로 다른 사역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몸의 관점에서, 그리스도의 몸에 관련하여 고려됩니다.

그 이유는 지방 교회이든, 사역이든, 일이든, 모두 다 교회(the Church)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그들 사이를 구별할 필요는 있지만, 실제로 그들을 분리시킬 수는 없습니다.

교회(the Church)의 서로 다른 영역들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실재를 보고 전체로서 서로 연관되어 활동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 책임이 다르다는 이유로 빈틈없는 칸막이 방 속에 거처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몸인 교회’는 교회들과 사역과 일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지방적으로 표현된 몸이고, 사역은 기능을 발휘하는 몸이며, 일은 증가를 추구하는 몸입니다. 셋 모두가 한 몸의 서로 다른 나타남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 상호 의존하며 상호 연관을 갖고 있습니다. 셋 중 어느 것도 독자적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심지어는 존재하지도 못합니다.

실제로 그들의 관계는 매우 긴밀하고 중요하므로 그들 중 하나라도 다른 것에 바르게 맞추어지지 않고서는 스스로 바르게 되지 못합니다. 교회는 사역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 그리고 일에 도움을 주지 않고서는 나아갈 길이 없고, 일은 사역의 공감과 교회의 뒷받침이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며, 사역은 오직 교회와 일이 있을 때에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속한 것들의 영적인 본성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그들 사이를 구별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을 분리된 단위들로 갈라놓으려고 함으로써 몸의 상호 관계를 상실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그들 사이의 구별이 아무리 분명하다 해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이 다 교회(the Church)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로 움직이고 활동해야 합니다. 이것은 그들 특유의 기능들과 영역들이 어떠하든지 그것들이 다 한 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편으로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 사이를 구별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이 전체로서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몇몇 은사 있는 사람들이 그들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서 그들이 소유한 은사들을 가지고 사역을 수행할 책임을 떠맡는 것이 아니고, 몇몇 사람들이 부르심을 의식하고서 그들 자신을 일을 위한 협회를 조직하는 것도 아니며, 생각이 같은 수많은 믿는 이들이 연합하여 자기들을 교회라고 부르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반드시 몸의 입장 위에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소규모의 몸의 생활이고, 사역은 봉사에 있어서 몸의 기능 발휘이며, 일은 성장에 있어서 몸이 뻗어나가는 것입니다. 교회, 사역, 일 중 어느 것 하나도 그것 자체로 독자적으로는 존재하지 못합니다. 셋 모두는 그 존재가 몸에서 유래해야 하고, 몸 안에서 그 위치를 발견해야 하며, 몸의 유익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셋 모두가 몸에서 유래하고, 몸 안에 있으며, 몸을 위합니다. 만일 몸의 일부들이 몸과 관계되고 서로 연관된다는 원칙이 인식되지 않는다면, 교회도 없고 사역도 없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 원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데, 그것은 이 원칙이 없이는 모든 것이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일 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역의 기본 원칙은 몸입니다. 일의 기본 원칙도 몸입니다. 또한 교회들의 기본 원칙도 몸입니다. 몸이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활과 일을 지배하는 법칙입니다.

(워치만 니-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 394-3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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