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자성어 중에 ‘환골탈태’(換骨奪胎)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자 그대로의 의미는 ‘뼈대를 바꿔 끼고 태를 바꿔 쓴다’입니다. 또한 어원에 따르면, ‘환골’은 ‘옛사람의 시문을 모방해 새로운 어구를 만드는 것’을, ‘탈태’는 ‘시문의 뜻을 파악해 원래의 시와 다른 뜻을 갖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답니다. 그 어느 경우든 쉽지 않은 과정을 거친 대전환이 있는 변화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초기에는 좋고 기쁜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 후 우리는 언젠가는 누구도 예외 없이 이런 환골탈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욕정에 따라 썩어 없어져 가는 우리의 옛사람”을 벗겨내고, “그 실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사람”을 입어 그분의 영광 안으로 이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히 2:10). 이 과정에서 거의 모든 이들에게 낙심하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이때 주님에게서 멀어져 가는 마음을 다잡고, 믿음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비결이 바로 아래 이사야처럼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히 12:2).
그러나 웃시야왕이 죽던 해에
나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뵈었는데,
그분의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사 6:1).
위 본문이 언급한 웃시야(Uzzia, 아사랴) 왕은 16세에 유다 10대 왕으로 즉위하여 52년간 통치했습니다. 그가 말년에 교만으로 나병이 걸리긴 했지만, 재위 기간에 강원도 크기에 불과한 유다를 주변국으로부터 조공을 받게 하고, 예루살렘 성벽을 견고히 하고, 물웅덩이를 많이 파서 목축업과 농업을 크게 장려했고, 약 31만 명의 정예군을 둘만큼 막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했습니다(대하 26장 참조). 아무튼 “여호와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했던”(왕하 15:3) 그가 죽은 것은 이사야에게는 낙심되는 환경이었습니다.
위 본문에서, 이사야가 낙심이 되는 환경이 닥쳐왔을 때 눈을 들어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을 뵌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이에 대해 <회복역 성경>의 관련 각주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이 땅의 상황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백성의 부패와 타락이 어떠하든, 그리스도는 여전히 그분의 영광 가운데 보좌에 앉아 계신다. …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이 변하고 요동하지만, 그리스도는 오늘도 그리고 영원히 동일하시다(히 13:8).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내리떠 이 땅의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히 12:2)”(사 6:1, 각주 1).
사실 신약에도 유사한 말씀이 있습니다. 즉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시며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주목합시다. … 그분은 하나님의 보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라고 말씀합니다(히 12:2). 이처럼 우리의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주목하는 것은 바로 앞 절의 “무거운 짐과 우리를 쉽게 얽어매는 죄를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은 경주를 합시다”라는 말씀을 실천할 수 있는 주된 비결입니다. 주님 앞에서 이런 말씀들을 묵상할 때 제 주변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례들이 생각났습니다.
첫째, 최근에 제가 몸 담고 있는 교회에서 갑자기 짧은 시간 내에 여러 성도님들에게 환경이 닥쳤습니다. 한 형제님에게는 갑자기 뇌졸중(stroke)이 왔고, 그 무렵 한 노 자매님이 넘어지셔서 고관절 골절상을 입으셨습니다. 얼마 안 있어서 90세 고령의 한 형제님이 갑자기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응급실에 실려 가셨습니다. 한 형제님은 지병이던 심장 동맥 수술을 하셨고, 또 한 형제님은 눈 수술을 하셨습니다. 이런 환경을 당할 때 교회는 기도했고, 본인들은 (보좌에 계신) 주님을 앙망하므로 지금은 모두 한 고비를 넘겼고, 그 고난의 기간 동안에 체험했던 주님의 은혜와 긍휼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번 집회 기간에 작년에 췌장암으로 남편을 잃은 한 자매님과 교통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남편의 빈자리, 긴 투병 과정 전후로 겪었던 이런저런 안타까운 순간들에 대해 속을 열고 말씀하실 때, 저는 묵묵히 들어드렸습니다. 한국에 돌아가신 후에 덕분에 마음이 많이 가벼워졌다는 문자를 주셨습니다.
셋째, 제 주변의 한 형제님은 당연히 나올 줄로 알았던 영주권이 어처구니없는 일로 거절되었습니다. 그 후 평소에 안 하던 고생을 많이 하시다가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긍휼로 여전히 주님을 섬기고 계신 것을 볼 때, 여기서 겪으셨던 그 모든 고난과 낙심되는 일들이 결국 협력하여 선이 이뤄지게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롬 8:28).
저 역시 이런저런 말 못 할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답답한 환경들 앞에서, “우리는 눈을 내리떠 이 땅의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히 12:2)”는 위 각주 내용의 권면은 제게 큰 힘과 위로가 됩니다.
오 주님, 낙심되고 답답한 환경이 다가올 때
믿음으로 눈을 들어
보좌에 앉아 계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