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마리아처럼 그 주의 첫 날 새벽 아직 어두울 때, 막달라 여인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을 보고. (요 19:1) HOME  >  그리스도의 편지  >  이른 새벽 마리아처럼
관용이 알려지도록 하십시오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26.03.10 조회수190 댓글0

 

인터넷에서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들의 용서만을 위해 사람으로 오셨다면왜 바로 죽지 않으시고 삼십 년 이상을 사신 후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는가아마도 예수님의 일생 중에 구속하는 죽음이 교계에서 많이 강조되다 보니 이런 의문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질문은 주 예수님의 육체 되심(성육신)부터 승천까지의 성경 기록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재고해 보게 했습니다한 신실한 성경 교사는 그분의 육체 되심은 무한한 하나님을 유한한 사람 안으로 이끌어 오심이고그분의 죽음은 (옛 창조의) ‘종결’(termination), 부활은 (새 창조의) ‘발아’(germination), 승천은 (주와 그리스도로서의) ‘취임’(Inauguration)이고그분의 인간 생활은 (참사람으로서 하나님을 사는) ‘을 세우신 기간으로 보았습니다이러한 해석은 나름 설득력이 있는 시각으로 제게 다가왔었습니다.

 

 

여러분의 관용(forbearance)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도록 하십시오.

주님께서 가까이 계십니다( 4:5).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3장에서 그리스도를 우리의 생활과 본과 목표로 체험하는 것을 말한 후에, 4장에서는 그것들의 적용으로서 다른 이들에게 관용(forbearance, 에피에이케스, 1933)할 것을 말합니다그러나 이 단어는 그리 단순하지 않고, ‘Bible Hub’에 있는 영어 성경의 다양한 번역들처럼 여러 의미들이 복합적으로 포함된 개념입니다참고로 <회복역 성경해당 각주는 관용을 아래와 같이 설명합니다.

 

관용의 정의: “관용은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합리적이고사려 깊고배려하며자기의 법적 권리 엄격하게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이것은 이기적인 야심이나 헛된 영광( 2:3), 불평하거나 따지는 것( 2:14)과 대조된다관용은 믿는 이들이 살아 낸 탁월한 미덕이신 그리스도 자신이다(각주 2).”


참고로 영한사전은 forbearance을 관용용서참을성자제삼가는 것, (권리 행사의보류, (채권자의지불 유예라고 했습니다. <확대역>도 관용을 상냥함정중함인자자비로움이타적아량포용력공평참음견딤으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들로 풀어서 설명했습니다.

 

그러므로 위 본문 바로 다음 구절의 염려’(“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가 사탄이 근원이고 그리스도를 살지 않는 인간 생활의 총체라면관용은 그리스도 사는 사람들 생활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남에게 관용을 베푸는지 여부가 그가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인지를 알 수 있는 핵심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중요한 것은 동사인 알려지도록 하십시오가 명령형 수동태이며이것은 자기 스스로의 판단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눈에 관용을 베푸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입니다참 쉽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의 본위 관용의 관점에서 사복음서에 기록된 그분의 삶을 묵상해 보려고 할 때몇 가지 장면들이 생각났습니다아래 사례들은 참사람이셨던 그분께서 다른 이들을 배려하시고 자기의 법적인 권리를 엄격하게 주장하시지 않은 장면들이었습니다.

 

1) 베드로는 자신의 스승인 주 예수님을 잡으러 온 무리 중 한 명인 대제사장의 노예말고의 오른쪽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그러나 주님은 그의 귀를 만지시어 고쳐 주셨습니다( 22:50-51). 2) 주님은 성전세 내는 문제로 소위 사고를 치고 돌아 온 베드로와 성전세 받는 이들의 입장 모두를 배려하셔서바다낚시로 잡은 물고기 입에서 은화 한 닢을 꺼내어 갖다 주도록 안배하셨습니다( 17:27).

 

3) 주님은 십자가에 달리시어 힘든 상태이셨지만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한 범죄자의 요청을 받고,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23:43). 4) 주님은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 등과 동행하실 때최근에 예루살렘에서 나사렛 사람 예수님에 관해 일어난 일들에 대해 그것도 모르냐는 식으로 핀잔을 들으셨지만배경이 된 성경의 기록들을 설명해 주시는 방식으로 담담히 처신하셨습니다( 24장 참조). 사실 이런 사례들은 이 외에도 사복음서 도처에서 찾아낼 수 있습니다.

 

적용저는 언제부터인가 성경이 우리에게 하라’ 혹은 하지 말라고 요구한 내용들이 저의 삶에서 실천되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습니다아마도 예수쟁이들은 말만 잘한다는 외부인들의 평가를 수치스럽게 여겼던 그 이후였을 것입니다물론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그것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와 삶에서 얼마나 예수 냄새가 나는지를 평가합니다그런 맥락에서 현재 한국 기독교 내에서 정치적 신념에 따라 좌우로 나뉘고다른 진영에 속한 이들에게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이는 듯한 현상은위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는 말씀과는 많이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그런데 이것은 비단 정치 영역에서만이 아니라우리가 남에게 관용을 보이는 것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는 모든 것들에게도 해당합니다.

 

겨울 훈련 집회가 가까워지자 여러 곳으로부터 접대 요청을 받고 있습니다이때 가볍게 반응하지 않고 어떤 것이 그분들에게 관용을 보이는 길인지에 대해 주님께 나아가 진지하게 여쭙게 됩니다또한 위 본문 말씀을 누린 이후로제가 직간접적으로 접촉하는 모든 이들 앞에서 관용이신 그리스도를 살아 낸 표현이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게 되었습니다참으로 주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오 주님저의 관용이 모든 사람에게 알려지게 도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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