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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화. 초기 교회 – 초기 교부들(1)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17.02.10 조회수5394 댓글0

 

1. 서론

 

초기 사도들이 지나간 이후에 몇몇의 뛰어난 형제들이 교회에 의해 교부들로 여겨졌다. 그들은 세 계의 주요 그룹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첫 번째 그룹은 사도 교부들이다. 그들은 사도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사도 교부들의 예로 로마의 클레멘트, 이크나티우스, 폴리캅등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그룹은 2세기의 변증가들이다. 그들은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신앙을 수호하였으며, 순교자 저스틴과 테르툴리아누스, 오리겐 등이었다. 세 번째 그룹은 논쟁론자들이라고 불린 사람들인데, 그들은 주후 3세기 초부터 주로 교회 내부에 있는 이단적이고 클레멘트 등이다. 변증가들은 또한 논쟁론자가 되기도 했는데, 오리겐이 대표적인 예다.

 

 

2.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주후 30-96년)

 

 

 

 

그는 로마의 주교로서 로마 교회의 이름으로 고린도 교회에게 보낸 서신에서 면직된 장로들의 복직과 교회의 통합을 탄원했다. 그는 주교와 사제라는 용어들을 호환성 있게 사용하였다. 클레멘트는 삼일성, 그리스도의 신성, 은혜에 의한 의롭다하심, 그리고 교회의 연합에 관한 가르침들에 대해 분명한 간증을 지녔다. 클레멘트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의 제자였으므로 사도 교부로 여겨졌다. 그는 66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3. 이그나티우스(Ignatius, 주후 35-107년경)

 

 

 

 

테오포루스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그나티우스는 시리아 안디옥의 주교였다.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죄로 체포되었고 후에 콜로세움이라 불리운 원형경기장에서 순교 당하기 위해 안디옥에서 로마로 호송되었다. 그의 좌우명은 ‘검이 가까울수록, 하나님도 가까워진다’였다. 그리고 그는 박해자들을 향해 이렇게 선포했다. ‘내가 야수들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라. 그들을 통해 나는 하나님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밀이므로 야수의 이빨에 갈려 그리스도의 순결한 빵으로 발견될 것이다’ 그는 기독교를 의미하는 ‘Cgristianismos’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들 중 한명이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주교(감독)가 장로보다 높다고 가르쳤다. 그러한 잘못된 가르침은 계급제도와 기독교 행정에서 감독 체계의 근원이 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 사도 바울 그리고 사도 요한의 제자였꼬 7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4. 폴리캅(Polycarp, 주후 69-155년)

 

 

 

 

그는 이그나티우스의 손아래 동료였으며 이레니우스의 선생이었고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 그는 서머나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빌립보에 있는 교회에게 신약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인용하여 서신을 썼다. 그는 영지주의자 마르키온의 이단론에 강력히 맞서 싸웠다. 폴리캅은 86세의 나이로 주님을 위하여 순교 당했다.

 

 

5.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 주후 100-165년경)

 

 

 

 

순교자 저스틴은 초기 변증가들 중 한 사람이었다. 사마리아의 네아폴리스에서 이방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다양한 철학들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던 사람이었다. 주후 133년경 에베소에서 그는 한 연로한 그리스도인을 만나게 되었고, 그와의 대화는 저스틴을 플라톤을 뛰어 넘어어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었으며 그가 그리스도인이 되게 했다. 회심 이후에 그는 영지주의자 마르키온을 대항하여 글들을 썼다. 주후 165년경에 저스틴과 다른 여섯 명의 믿는 이들은 재판에 서게 되었다. 그들에게 이러한 질문이 주어졌다. ‘당신은 다시 일으켜져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저스틴은 대답했다. ‘나는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압니다’ 그들은 로마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고, 저스틴은 65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그는 순교자 저스틴이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6. 이레니우스(Irenaeus, 주후 130-200년경)

 

 

 

그는 서머나에서 태어났고, 폴리캅의 제자였다. 그리고 나중에 리옹의 주교가 되었다. 헬라어로 쓰인 그의 훌륭한 저서 이단을 반박함은 라틴어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무엇보다 영지주의를 반박했다. 그는 그리스도는 마지막 아담이시며 그 안에서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린 것이 회복되었을 뿐 아니라, 사람 안에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 안에서 하나님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참 사람이셨고 참 하나님이셨다’고 믿었다. 그는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요약해 주고 후에 다른 신조들의 기초가 된 신앙의 규범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7. 터툴리안(Tertullian, 주후 150-225년경)

 

 

 

 

그는 현재 북 아프리카 튀니지의 일부인 카르타고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산층 가정의 출신이며 이교도 부모님들은 그에게 양질의 교육을 받게 했다. 그는 철학과 역사에 뛰어났고, 헬라어와 라틴어를 유창하게 말했다. 터툴리안은 카르타고와 로마에서 변호사로 활약했는데, 따라서 그가 믿는 이가 되었을 때 법률용어와 법률가의 특별한 변론 관습을 교회로 가져왔다. 그는 로마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동안 주후 193년과 195년 사이에 회심하였는데 이것은 그가 순교자들에게 본 확고함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변증이라는 유명한 저서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거짓된 혐의를 반박하고 로마법 아래에서 그들에 대한 대우에 이의를 제기하였다. 그의 반론하는 글들은 마르키온, 헤르모게네스, 발렌티누스 같은 영지주의자들에 대항하는 것이었다. 몇몇의 영지주의자들은 또한 가현설주의자들이기도 했다. 터툴리안은 라틴 서방에 삼일 하나님에 대한 정의를 제공했는데 이는 ‘세 인격안에 있는 하나의 실질’이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라틴어 단어 ‘Trinitas’를 만들어 냈는데 이것은 ‘Trinity(삼일성)’이라는 영어 단어가 되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구분지었고 이후에 니케아 신조를 공식화 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삼일성, 실질, 인격 이라는 용어들 외에도 터툴리안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생일’이라고 말하고, 신약성경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사람 중 한명이었다. 그는 모든 이교도적인 것들은 사악하다고 여기며 이렇게 질문하였다. ‘아테네가 예루살렘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로마 제국의 박해에 대항하여 그는 ‘당신들이 우리를 베어들일수록 수확은 더 풍성해진다. 그리스도인들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7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8. 오리겐(Origen, 주후 185-254년경)

 

 

 

 

오리근에느 북 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도인 부모님들에게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레오니데스는 그에게 신성한 문학과 세속적인 문학 두 가지를 동시에 교육시켰다. 그의 아버지는 오리겐이 17세였던 주후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로스 황제의 박해 기간에 체포되었고, 그의 믿음을 위하여 순교하였다. 오리겐은 아버지에게 다가가 함께 죽으려고 필사적으로 힘을 다했지만 그의 어머니는 오리겐의 옷을 숨겨 그를 막았다. 그는 문답학교에 입학하여 클레멘트 아래에서 공부했고 19세의 나이로 그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따라서 그는 연구하고 가르치고 저술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주후 230년 여행 중이었던 그는 가이사랴와 예루살렘의 주교들에 의해 사제직을 수임 받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들은 그를 계속 쫓아와서 오리겐의 사제직 임명은 유효하지 않다는 선언을 받아냈다. 오리겐은 그 후 주후 231년에 알렉산드리아를 떠나 여생을 가이사랴에서 보내면서 교사와 저자로써의 그의 일을 계속 수행해 나갔다. 데키우스의 박해 당시 오리겐은 두로에서 수감되어 고문을 당했다. 이러한 고통들로 인해 그는 쇠약해졌고 그로부터 2년 후인 69세의 나이로 두로에서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하늘에 속한 본성을 보았고, 이는 영원한 복음의 이는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로 구성된다는 것도 보았다. 그는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모세의 다섯 권의 책들을 모세 오경이라고 언급한 최초의 사람으로 여겨진다. 모세 오경이라는 말은 다섯 권으로 된 책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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