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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화. 중세 교회 – 수도원 제도의 출현과 금욕주의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17.02.17 조회수5608 댓글0

 

1. 서문

476년도에 서로마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로물루스 아우구스툴루스는 게르만 족의 왕이었던 오도바카르에 의해 왕위에서물러나게 되었다. 그것이 중세교회사의 시작이었다. 역사가들에 의해 중세 시대는 암흑시대라고 알려져 있다. 중세 교회사는 로마 천주교를 포함하는데, 로마천주교는 590년 그레고리 1세가 교황의 자리에 등극했을 때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것은 또한 교황 제도가 세워진 두아디라 시대의 시작이었다. 중세시대는 일반적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몰락과 함께 끝이 났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중세의 교회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으로 끝이 났다. 로마천주교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존재할 것이다.

 

 

 

 

 

2. 수도원 제도의 출현과 금욕주의

수도원 제도라는 것은 각기 다른 수도회의 창설자가 세운 특정한 규율과 규정들에 따라서 묵상하고 기도하기 위해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삶은 사는 것을 의미한다. 첫 번째 수도사는 이집트 사막에서 금욕적이고 고독하며 격리된 삶을 살았던 은둔자였다. 박해의 연속이었던 서머나시대 동안, 많은 믿는 이들은 고독과 은둔의 피난처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세속적인 것들이 증가하던 버가모시대에 신성하고 거룩한 삶을 갈망했던 많은 믿는 이들이 물리적으로 그들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켰다. 그런데 그들은 비록 세상으로부터 외적으로 격리되었지만 내적으로는 사실상 그들 안에 여전히 세상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몬테카시노 베네딕트 수도원

 

 

수도원에서 실행되었던 금욕주의는 성경적인 것이 아니다. 금욕주의는 이교도에서부터 온 것이다. 그것은 거룩한 삶을 살고, 정욕이 가득한 생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갈망을 가진 사람들의 이상적인 삶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일 뿐이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금욕주의를 포함한 세상의 철학으로부터 구출되었다(골 2:20-23).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위에 것들을 추구해야 하고(골 3:1-3), 하늘에 속한 것들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럴 때에 이 땅에 속한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다. 부정적인 것들에 주의를 두지 말고, 우리의 영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채워진다면, 금욕주의는 필요가 없다. 금욕주의를 실행하면 할수록 더욱더 정욕으로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에게는 초월하는 생명이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바울이 말한 “오히려 나는 나의 몸을 쳐서 노예로 삼습니다.”라는 구절을 오용해 육체를 학대하는 금욕주의의 근거로 삼는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를 제한 없이 쳐서 또 다른 극단에서 육체를 방종하게 하는 이러한 실행에 동의할 수 없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서 말한 것은, 그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이지, 우리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클뤼니 수도원

 

 

3. 결론

상당수의 좋은 것들이 소도원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수도원은 아픈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안식처였다. 게다가 초기의 수도사들은 성경을 포함한 많은 고대 문서들과 사본들을 복제하여 이를 보존해 왔다. 그러나 수도원 제도 자체는 위에서 간단히 살펴본 금욕주의와 관련지어 볼 때 성경적인 것이 아니었다. 수도원 단체들이 부유해져 가면서, 그들은 총체적으로 부도덕하게 되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교회 안에서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아닐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현 시대에 이 세상에서 살고 있다.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해 있지는 않다(요 17:14, 15). 더욱이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이러한 암흑시대에 주님을 밝게 비추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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