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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9화. 신비주의 - 마담 귀용(Madame Guyon)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17.05.16 조회수6319 댓글1

 

마담 귀용

 

 

프랑스 몽타르지(Montargis)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잔느 마리 부비에 드라모디는 결혼 후 마담 귀용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에 비해 아들을 편애했다. 마담 귀용은 도미니크 수도회 안의 베네딕트 수사회와 함께 주로 우르술라회 신학교에서 수학하였다. 젊은 시절 그녀는 하나님을 위해 순교하려 했고, 수녀가 되기를 원했다.

 

그녀는 1664년 15세의 나이에 22세 연상의 쟈크 귀용(Jacques Guyon)이라는 부유한 남자와 결혼하였는데, 이는 그녀의 선택이 아닌 그녀의 부모의 선택이었다. 결혼 후 마담 귀용은 시어머니의 학대와 남편의 건강 악화, 더욱이 그녀가 가장 사랑하던 4살 아들의 죽음과 같은 시련으로 얼룩진 삶을 살았다. 심지어 하인들도 그녀에게 적대적이었으며 공공연하게 악담을 했다.

 

그녀의 비범한 아름다움은 때때로 그녀에게 올무가 되곤 했는데, 그녀가 22살 때 천연두에 감염되었다. 시어머니의 방해로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게 되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마침내 그녀가 병상에서 일어났을 때,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기뻐했다. 왜냐하면 지난 날 거울 앞에서 몇 시간동안이나 자신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던 허영심에서 구출되었기 때문이다. 마담 귀용은 “나는 정말 십자가를 귀히 여긴다.”라고 말했다. 비록 그녀가 시어머니의 비열한 행동들과 폭군인 남편과 하인들의 무례함으로 인해 괴로움을 겪었지만, 여전히 침묵 속에서 십자가를 찬양했다. 그녀의 남편과 시어머니, 심지어 성직자들도 그녀의 고요한 내면의 기도를 박해했다.

 

1676년 그녀의 남편이 사망했다. 남편의 마지막 병상에서 그녀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불쾌하게 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 그러자 그녀의 남편이 대답했다.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은 나요, 나는 당신을 가질 자격이 없었소.” 남편의 사망 후, 세 아이가 남겨졌는데 그 중의 둘은 병에 걸려 일찍 죽었다. 그녀는 남편의 유산의 대부분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꼭 필요한 돈만 남겨둔 채 나머지는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한 자신의 아이들을 돌봐줄 보호자를 구해서 그녀가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기도와 믿음에 관하여 말하고 저술하며, 자선 활동을 하는데 자유롭도록 했다.

 

그녀는 일명 정적주의의 신실한 추종자였다.이러한 사상의 기초는 성 프란치스코 드살, 마담 드 샹탈, ‘그리스도를 본받아’의 저자 토마스 아캠피스에 대한 추구로부터 왔다. 그녀의 가르침은 로마 가톨릭에 의해 반대를 당했고, 이단 취급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관점을 고수하지 않겠다는 서약에 강제적으로 동의해야 했지만, 그 서약을 깨버렸다. 그러자 고요함과 내면의 기도에 관련된 서적이 불태워졌고 그녀는 투옥되었다.

 

그녀는 4번이나 투옥되었다. 첫 번째는 1688년 파리 근교의 세인트마리 수도원에서 8개월간 갇혔고, 두 번째는 1695년부터 1696년까지 뱅센성에, 세 번째는 1696년부터 1698년까지 뱅센수도원에 투옥되었다. 네 번째는 악명 높은 파리의 바스티유 감옥에서 1698년부터 1702년까지 4년간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제일 어두운 지하 감옥에 놓여 졌고, 그곳에서의 마지막 2년 동안은 어느 누구와도 말 할 수 없었고, 편지를 쓰는 것과 방문객을 만나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이러한 투옥의 체험에 대해 그녀는 “오 하나님, 나의 고통과 비례하여 사랑과 인내를 증가시키신 분, 우리의 행복과 영적이고 일시적이며 영원한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그분이 기뻐하시는 데로 하시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바스티유 감옥

 

 

그녀는 기도하는 짧고 가장 쉬운 방법을 포함하여, 40권의 책을 썼다. 그녀는 약 900개의 찬송가와 시를 썼는데, 그 중 대부분이 수감 중에 쓴 것이다. 그녀는 때때로 하루에 5-6개의 찬송가를 짓곤 했으며 수 백 통의 편지를 써서 그 중 일부를 그녀의 조력자인 프랑수아 페넬롱에게 보냈다. 페넬롱은 성인 교훈집의 저자이다. 그녀가 지은 책은 영적인 고전이 되었으며 프랑수아 페넬롱, 존 웨슬리, 허드슨 테일러, 제시 펜 루이스, 한나 휘톨 스미스, 워치만 니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존 웨슬리는 마담귀용을 두고 “참 거룩함의 표본이었던 이와 같은 여인을 찾으려면 몇 세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바스티유에서 석방된 후 블루아로 추방되었고 69세에 같은 곳에서 사망했다. 마담 귀용이 감옥에서 작사한 찬송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난 새장 속의 작은 새

주가 날 여기 가뒀네

난 주를 향해 노래해

갇히니 심히 즐거워

주 당신 찬송함으로

내 하나님 기쁘게 해

(찬송가 524장)

 

 

 

마담 귀용은 그녀의 지하 감옥인 새장을 사랑하면서 성숙해 갔다(창세기 라이프스타디_위트니스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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