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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6화. 속생명파 – 제시 펜 루이스(Jessie Penn-Lewis) 작성자관리자 작성일2017.08.04 조회수4535 댓글0

 

 

 

 

그녀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초반부 인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1861년 2월 남부 웨일즈의 니스(Neath)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토목 채굴기사였고, 어머니는 부유한 사업가의 딸이었다. 나는 둘째 딸이었는데 첫째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 나의 아버지는 니스의 칼빈계 감리교파의 유명한 목사이셨던 사무엘 존스(Samuel Jones)였다. 그의 봉사는 남북 웨일즈 전체를 포함한 것으로, 당시의 주도적인 영적인 인물들과 함께 전도여행을 다녔다. 그의 주요사역은 믿는 이들을 세우는 것이었고, 그가 가장 선호하는 주제는 속죄였다.

 

나의 아버지의 집은 종파의 인도하는 목사들이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여기저기로 지날 때 모이는 장소였다. 나의 유년시절의 기억은 5월의 첫 일요일에 있던 주일 학교의 대집회와 끊임없이 우리 집을 드나들던 목사님들에 대한 기억들로 요약된다. 그러한 까닭에 나는 종교적인 환경에서 칼빈계 감리교의 영향 아래 성장하였다.

 

어머니는 후에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나를 하나님에게 드렸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녀는 죄에 대한 지식이 없이 아이가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사람이 ‘타락한 아담’안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그녀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이러한 깨달음은 내가 두 살 때 왔다. 내 유모는 아이들을 어떤 집에도 데리고 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지키지 않았고, 나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질문을 받자 나는 유모 편을 들었고 우리가 거기에 가지 않았다는 거짓말을 하였다. 어떻게 하여 사실이 밝혀졌고 어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달려가서 비탄의 눈물을 흘리면서 천사 같은 아이가 거짓말을 하였다는 사실을 말했다.

 

나는 어떤 가르침도 없이 생후 9개월이 되었을 때 걷기 시작했다. 단순하게 일어나서 방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항상 걸어 다녔다. 의사는 어머니에게 나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나의 적이 바로 나의 활발한 두뇌여서, 그것을 잠재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문으로 알파벳을 스스로 깨우쳤다. 그리곤 아버지와 다른 이들에게 내가 철자를 불러주면 그 단어를 발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네 살에 한 번도 글을 읽는 것을 배운 적이 없었는데도, 성경을 자유롭게 읽었다. 또 네 살에 이야기를 짓기 시작하였는데, 후에 모든 등장인물들을 다 묘사해 낼 수 있었다.

 

우리 집은 도서관이었다. 아버지는 열렬한 독서가이셨고 모든 고전과 권위 있는 책을 사들였다. 어린아이들이었던 우리는 바닥에 앉아 갖가지 책과 잡지들 가운데서 읽고, 읽고, 또 읽었다. 퀘이커 교도인 어느 숙녀가 학교를 열었는데, 내 두 형제들과 나는 주간 학생으로 그곳에 다녔다. 나의 경우엔 자주 환경의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나의 학교생활에는 연속성이 부족했다.

 

내가 열 세 살이었을 때 나는 성 데이비드 교회의 주일 학교 모임을 다니기 시작했다. 니스의 교구목사는 그리피스(Archdeacon griffiths)였다. 보무님은 칼빈계 감리교파의 일원이었다. 내가 열여선 살 때 우리 행복한 가정에 커다란 슬픔이 닥쳤다. 아버지가 일하시던 중에 하수 가스에 중독되셔서 2년 동안 투병하셨고 1877년 4월 24일에 돌아가셨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여덟 명의 자녀가 남겨졌다. 큰 두 딸과 네 명의 아들과, 이제 석 달된 아들이었다. 나는 그중 맏이로서 열여섯 살이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기 위해 일을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열아홉 살에 결혼했다. 사랑으로 한 결혼이었다. 나는 나의 남편의 성품을 사랑했다. 어린 소녀였던 나는 자기가 한 말을 절대로 어기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그러한 사람이 내 인생을 의탁할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여전히 몸이 아주 약했다. 너무나 허약해서 내 아버지의 형제는 내가 결혼할 사람에 대해 의무감을 가지고 병자 한 사람을 종신토록 떠맡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험을 견뎌냈다. 우리는 결혼했고, 그가 서섹스(Sussex) 지방의 회계 서기로 일하는 브라이턴(Brighton)에 가서 살았다.

 

종교적인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지만, 진정한 마음의 내적 변화는 내가 결혼하고 나서 옛집에서 떠날 때까지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할 당시, 남편은 브라이턴의 수태고지교회에 다니고 있었다. 교구목사는 아주 독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참회하거나 그의 강한 영국 국교회 카톨릭파의 견해에 진지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내가 결혼한 지 18개월쯤 되었을 때, 나는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해 느슨한 것에 불안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주님을 진실로 추구하기 시작했다. 나의 회심은 어떤 사람의 도움도 없이 일어났다. 1882년 새해였던 그 시간은 내 마음에 새겨졌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알고자 하는 깊은 내적 갈망만이 있을 뿐이었다. 책꽂이에서 거의 읽지 않은 성경책을 꺼냈다. 책장을 넘기다가 이 말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그리고 또 다시 무심코 페이지를 넘겼는데, 거기에는 ‘그분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요 3:15)’라고 쓰여 있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 위의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하여금 내 죄를 짊어지게 하셨다는 것을 내가 믿는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여기에서 정말로 내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재빨리 ‘주여 나는 믿습니다’라고 부르짖자, 한 사람의 혼이 죽음으로부터 생명으로 옮겨졌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죽으신 분의 사랑의 전리품이었다. 하나님의 영이 즉시 내 영과 더불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증언하셨고, 깊은 평강이 나의 혼을 채웠다.”

 


 

그녀의 인생 역정은 메트칼페의 이야기에서 계속 된다.

 

1883년 8월, 펜 루이스씨는 서리에 있는 리치먼드 지역의 회계사로 임명되었다. 그곳에 있던 성 삼위교회로 가게 되었고, 초기 케스윅 총회의 신학자라 불렸던 이반 홉킨스목사의 사역 아래에 있었다. 열렬하고 배고팠던 제시 펜 루이스의 마음에 주어진 최초 설교의 주제는 ‘하늘의 열림’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그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끊임없는 죄들에게 승리하는 길에 대해 들었고, 그분께 완전히 굴복되는 것의 기쁨과 영으로 충만한 삶의 가능성에 대해 듣게 되었다. 어느 날 그녀가 목사관을 방문하고 있을 때 홉킨스부인은 그녀가 그리스도인인지 직설적으로 질문을 했다. 그녀의 즉각적인 대답은 ‘네’였고, 이것이 그녀의 그리스도에 대한 첫 번째 공개적인 고백이었다. 죄를 이기는 승리를 알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뒤따랐고 그녀는 이러한 이야기를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서 그녀를 대신해서 해주실 수 있는 것에 대한 극도의 갈망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타고난 순결함은 이보다 덜한 어떤 것에 만족할 수 없게 하였다. 그녀의 지속적인 약점이었던 신체적인 약함 속에서 그녀가 추구했던 목표는 그녀의 글들에서 가장 잘 엿볼 수 있다.

 


 

다음은 펜 루이스에 대한 위트니스 리의 글 중 일부이다.

 

“앤드류 머레이 다음에는 펜 루이스가 있었다. 그녀 또한 속생명파 부류에 속한다. 워치만 니형제님이 쓴 영에 속한 사람의 상당 부분은 그녀의 책들을 번역한 것이다.”

 

“앤드류 머레이 다음에 주님은 제시 펜 루이스 여사를 일으키셨는데, 그녀는 앤드류 머레이에게서 도움을 받았다. 펜 루이스 여사의 저서는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주관적인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그녀의 저서는 독자들을 그 영께로 안내했다. 그녀의 저서를 통하여 우리는 매우 실재적이고 효과적으로 그 영을 만질 수 있다. 그녀의 저서는 능력이 있고 그녀의 말함 역시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오순절 주의의 실행을 절대적으로 완강하게 반대했다. 그녀의 책 ‘성도들의 영적 전쟁’에서는 오순절 주의의 실행들을 공격했다. 니 형제님의 세 권으로 된 책 ‘영에 속한 사람’에서 영적 전쟁에 관한 장은 펜 루이스 여사의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니 형제님은 그 세 권이 순전히 그의 저서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그 세 권을 출판 할 때 긴 서문을 포함시켰다. 서문에서 그는 인용한 다른 이들의 책과 쪽을 밝혀 두었다. 그가 인용한 저서 중 비교적 큰 부분은 펜 루이스 여사의 것이었으며, 특별히 영적전쟁에 관한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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