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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영국 서퍽 주(Suffolk)의 피젠홀(Peasenhall)에서 태어났다. 영국 성공회 선교사인 마가렛 바버는 1899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가게 되었다. 그녀는 푸젠성(福建省) 푸저우(福州)에 있는 타오수 여자 고등학교에서 7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쳤다. 선교단의 기록에 따르면 그녀는 열렬하고 헌신적인 사람이었으며 빛나는 성품의 소유자였다. 이 학교의 교장은 질투심으로 인해 중한 혐의를 날조해 그녀에게 뒤집어 씌웠다. 그녀는 깊은 십자가의 공과를 체험했고, 혐의에 관해 자신을 변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영국으로 되돌아갔고, 혐의에 관하여 계속 자신을 변호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교단을 책임지고 있는 한 형제가 그녀에게 자신은 권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니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 형제에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 말했다.
1909년에 그녀는 노리치(Norwich)의 서리 채플(Surrey Chapel)에서 사역하던 펜톤(D.M.Panton)과의 교통 후에 개인적으로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녀보다 스무 살이 어린 조카 밸로드(L.S. Ballord))가 그녀와 동행하였다. 그녀는 마웨이에 있는 루오싱 정박지 건너편에 있는 바이야탄(白牙潭)에 정착하였다. 그녀는 64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죽기 전에 그녀는 생명, 생명! 이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바버 자매님의 죽음 이후 밸로드는 1950년 영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바이야탄에서 사역을 계속 하였다.
워치만 니는 바버 자매님이 “주님 안에서 매우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녀의 주님과의 교통과 주님께 대한 충성은 세상에서 많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워치만 니는 나중에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바버 자매님과 함께 했던 시기에 그녀는 매우 실제적인 방식으로 주님께 사용되었다.” 그는 그가 사랑하게 된 그녀의 찬송 중 하나는 생각했다.
내가 가는 길이 나를 십자가로 이끈다 하더라도
당신이 선택하신 길이 고통과 손실로 이끈다 하더라도
그 보상이 매일, 매시간 막힘없는 교통이 되게 하소서
찬송 받으실 주님,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이 되게 하소서
그녀는 항상 그녀 편에서 그림자가 없는지를 주의했다. 그녀가 워치만 니 형제에게 유언으로 넘겨준 푸저우에서 도착한 낡게 닳은 성경안에는 이런 기도가 적혀 있었다. “오 하나님, 제 자아에 대하여 완전하고도 끊임없는 계시를 허락하소서!” 그리고 책의 앞 장에는 오래 전에 적었던 그녀의 글이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원한다.” 그는 후에 이 글을 자신의 글로 삼았다.

바버 자매의 어록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비결은 95%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가에 관한 문제이고, 오직 5%만이 이해의 문제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