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Amazing Grace
Amazing Grace! 한국어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으로 번역된 이 찬송은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는 곡이며,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진 곡입니다. 이 놀라운 찬송시를 지은 이는 존 뉴톤입니다. 이 찬송은 존 뉴톤의 전 생애의 체험을 요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노예선의 선장이었던 한 사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의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곡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바로 뉴톤과 같은 사람이며,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놀랍고 무한한 은혜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곡에 대한 많은 해석을 하는 것보다 뉴톤의 일생을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더 큰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찬송시는 곧 뉴톤의 일생이기 때문입니다.
존 뉴턴의 유년기
존 뉴톤(1725-1807)은 1725년 한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특히 뉴톤의 어머니는 주님을 매우 사랑하고, 체험이 있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많은 시간을 내어 뉴톤을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지식들을 가르쳤습니다. 어머니의 성실함으로 뉴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우수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 네 살 즈음에 일반적인 서적들은 모두 읽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뉴톤은 기억력이 우수하여 성경의 보석 같은 구절들 잘 암기하였고, 좋은 찬송가와 시(詩)들을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훌륭한 보살핌 속에서 뉴톤은 어머니를 매우 사랑했으며, 또래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을 더욱 즐거워했습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어머니의 가르침은 뉴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어머니가 주님 품에 잠들다
그런데 뉴톤이 6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는 폐병으로 주님 품에 가고 말았습니다. 뉴톤의 아버지는 거친 뱃일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아내가 죽자마자 그 다음해에 곧바로 재혼을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린 뉴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뉴톤은 나쁜 행실에 빠져 부도덕한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1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를 따라 항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거친 환경 속에서 악하고 그릇된 것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며, 그 결과 성격이 거칠고 어그러지며, 방탕하고 타락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범죄를 저질러 감옥에 가기도 했고, 사회로부터는 구제불능의 인간으로 낙인이 찍혀 평생 노예선을 타고다니면서 일해야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깊은 속에 심겨진 믿음의 씨가 동시에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믿음과 가르침이 아주 천천히 그 안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었습니다. 뉴톤은 죄악을 행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분께 돌아가야 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고된 노예살이
1743년, 뉴톤 18세가 되던 해에 아버지의 추천으로 그는 해군 소위 후보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지만, 엄격한 규율과 규칙적인 생활에 얽매이기 싫어, 자주 탈영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파면되고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노예 신분으로 팔리게 되었습니다. 노예생활의 극심한 고통은 뉴톤의 몸과 마음에 많은 휴우증을 남겼습니다. 특히 그의 신체에 남겨진 상처는 뉴톤이 주님께 회심한 이후에 죄의 무게와 고통을 깊이 상고하도록 하는 흔적이 되었습니다.
1747년 2월 어느날, 바닷가에서 우연히 지나가던 상선의 도움으로 그는 고통스러웠던 노예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복귀하게 됩니다. 이것은 뉴톤에게 베푼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였습니다. 이후에도 위기때마다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그에게 임했지만, 위기가 지나간 후에 뉴톤은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다시 잊어버리고 죄악된 생활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폭풍우 속 회심
그러던 어느 날, 1748년 5월 10일, 뉴턴은 노예상선을 타고 고향으로 향하던 도중에 엄청난 폭풍우를 만나게 되어 생명의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님! 제게 긍휼을 베푸소서!”라고 여러 차례 부르짖었는데, 뉴톤 자신도 스스로 놀랐습니다. 그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고, 그 순간에 자신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머니의 사랑, 유년 시절 들었던 주님의 말씀, 그분의 부르심, 경고, 구원의 손길, 타락한 생활, 무수한 죄악들, 심지어 하나님을 모독했던 삶의 모든 순간 순간들이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뉴톤은 그때 자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 중의 죄인이며, 자신과 같은 사람이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에도 없으며, 먼 미래에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 예수님께 기도했으며, 자신의 모든 죄악을 낱낱이 자백했습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밖의 폭풍보다 더 격정적이었습니다. 후에 그는 이 순간을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날, 주님께서 기고만장한 저를 끌어내리시고, 깊은 물 속에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회심 이후에도 뉴톤은 계속 노예선의 선장으로 일했지만, 노예들을 인간적으로 대하고 이전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인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후에 그는 영국에서 노예제도가 폐지되는데, 큰 공헌을 했습니다)
결혼과 믿음의 진보
1750년, 뉴톤은 약혼자 메리와 결혼했습니다. 메리는 경건한 그리스도인 자매였습니다. 그녀는 뉴톤에게 토마스 아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라는 책을 추천했습니다. 이 책은 뉴톤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후에 뉴톤은 측량기사가 되었고 이제 더 이상 노예업에 종사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는 틈틈히 성경 연구에 매진하다가 어느 날, 갈라디아서 1장 23-24절에 완전히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만 “이전에 우리를 박해하던 사람이 이전에 아주 없애 버리려 했던 그 믿음을 지금은 복음으로 전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만 듣고서도, 나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는 목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조지 휘트필드와 요한 웨슬레와 교류를 가지면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43년간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1767년 뉴톤이 42세가 되던 해 그는,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에서 자신을 구원하신 주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에 기초하여 찬송시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을 쓰게 되었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살리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거기서 우리 영원히 주님의 은혜로
해처럼 밝게 살면서 주 찬양하리라
뉴톤의 마지막 생애
존 뉴톤은 일생토록 충성을 다해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는 80세가 넘는 나이에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으며, 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감사하며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적지 않은 나이로 그의 기억력은 크게 감퇴되었으며 심지어 설교를 하는 도중에도 자주 자신이 한 말을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는 그를 염려하여 목회를 그만하도록 권면했습니다. 이에 대해 뉴톤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내가 과거에 엄청난 죄인이었다는 것과,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긍휼히 여기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기 때문에, 내 목숨이 다하는 그 시간까지 복음을 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1807년 12월 21일 82세로 런던에서 주님 품에 잠들기까지, 존 뉴톤은 일평생 쉬지 않고 신실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노예선의 키를 잡았던 한 죄인이, 구원의 방주를 타고 말씀의 키를 잡고 하나님의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존 뉴턴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주님의 노예, 존 뉴톤은 우리의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로 보존되고 회복되고 용서받고, 또 자신이 오랫동안 대적하고 파괴하려 했든 그 믿음을 오히려 전하게 되었습니다.”
[존 뉴톤, 1725-1807]